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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돌아오는 길

by 이얌리손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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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남한산성

작가     : 김훈

출판사 : 학고재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북방의 여진(女眞)의 성장을 명(明)은 두고 볼 수밖에 없었나보다. 그들 자신의 심장을 향해 들어오는 화살을 끝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미 손과 발은 썩어 문드러져 더이상 손과 발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였으나 여전히 좋은 옷에 값나가는 보석을 탐하고 좋은 음식을 구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조선은 주군의 재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유교적 관점에서 흙수저 부모를 버리는 자식이 어디있으며, 망해버린 주인을 버리는 신하가 어디 있으랴. 주군을 향한 충절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짝사랑이 아니었던가. 뜨거운 사랑의 맹세도 세월에 따라 퇴색하고 식어가기 마련인 것을 한쪽의 사랑이 깊으면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일까. 그 지점에서 오는 불행은 당사자가 아닌 백성들이 떠안아야 했던 것이다.

 

왜란 이후 급격히 쇠퇴한 명의 눈을 피해 누르하치의 후금은 북방 여진을 통일한다. 조선은 저물어가는 명과 떠오르는 후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여 실리를 추구하는 듯했으나 광해의 폐위로 기울어가는 명이라는 건물에 다시 올라타게 된다.

 

책은 1636년 인조(仁祖) 14년 병자호란을 이야기 한다. 조선의 임금은 처음부터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한다. 싸움의 몫은 신하들이고 그들의 무기는 혀만으로 충분하다. 목숨의 가치는 된장국 한사발로 족하다.

 

그 겨울, 임금의 말은 공허하고 신하의 말은 부질없다. 백성의 말은 젖어있고 병사의 말은 얼어 있다. 밖은 싸우기 힘들고 안은 싸우기 쉽다. 말은 게속 되돌아오고 발은 묶여있다. 이긴자들은 당연하고 진자들도 역시 당연하다. 겨울이 모든 것을 얼려놓았지만, 곧 봄이 되었다. 물이 풀리고 눈은 녹았다. 허나 어제의 주인은 오늘의 주인이 아니게 되고 오늘의 주인은 모두의 주인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가게 된다.

 

김훈의 소설은 한자리에서 오래 읽히지 않는다. 거기에 계절도 도와주질 않았다. 아직 공기가 차가운 그러나 해는 뜨겁다. 날씨가 좋은 듯하지만, 밖에 오래 있을 수 없고, 안에서 있으면 좋은 날씨에 설레어 밖으로 나가게 만들고. 두 달은 족히 걸린 듯 하다. 작가의 책에 빠지고, 그 장소에 빠지고, 그 시대로 빠지고, 그들에게 빠지고, 깊게 더 깊게 빠져 돌아오는 길이 힘들다.

 

책을 덮으면 그 아픔을 견디기 힘들지만, 어렵사리 마음을 누르게 된다. 감상이며 비평이며 차마하지 못하고, 작가의 문체를 따라 말하게 된다. 허나 당연히 그에 미치지는 못한다.

 

여전히 살아내는 몫은 각자의 것이다.

 

- 어느 초여름 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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