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동네마다 서점이 있던 시절일 것입니다. 우연히 들른 단골서점에서 '장정일의 독서일기 1'을 발견해서 구매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문학계에서는 마광수 교수를 필두로 외설논쟁이 치열하게 이슈화되던 시기 였으며, 장정일이라는 작가 또한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자주 이름을 오르내리던 차에 이자의 머릿속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에 관심을 떨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는 보통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도 못갔다고 프로필에는 써있던데 먼저 글이 너무 어렵습니다. 소설은 대강 영화화 된 것들만 살짝 살펴봤지만 도대체 뭘 얘기하려는지 주제의식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던 차에 '독서일기'와 얼마전 구매한 '공부'를 접하니 왜 그런지 알았습니다. 읽는 동안 10분에 한번씩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욕망을 누르느라 참 힘들었습니다. 계속 어렵다는 말만 하고 앉아있는데, 잠깐 생각을 해보니 작가가 원래 쉽게 말하는 법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책속에는
이 책은 부제목으로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고 달려 있습니다. 사실 책 한권이 이런 복잡한 차원의 시대에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이 책의 영향을 받아 변화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 사람의 세계는 바뀌지 않을까요? 그것 자체로 절반의 성공을 이룬건 아닐까요?
한마디로 '공부'는 '23가지 주제의 책에 대한 독후감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작가는 정규교육을 마치지 못했으나 그럼으로 다른 지식인 등의 학연에 자유로우므로 본인의 시각이 명확하게 확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독서일기'의 작가는 이삼십대였을 텐데 그의 언어는 매우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으며 예의도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가지 예로, 한 작품에(유명한 베스트셀러 입니다만) 대해 이야기하며 "역겹다" 라고 까지 했더랍니다. 그도 나이가 들어 40대의 시각으로 본 '공부'는 날카로움(예의 없음)을 무디게 만들었으나, 많이 묵직해져 더욱 더 어려워졌습니다.
부활이라면 뭔가 소멸이 되었어야 하는 데, "인문학의 소멸"이 아니라 "독자의 소멸"로 이어질 것 같이 너무 읽기가 힘이 달립니다. 하지만 당신의 시각을 인정하고 정제된 문장을 존경합니다.
3. 작가의 말
... 나는 언제나 '중용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 무식하고 무지하기 떄문이었다는 것을!
...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 내가 이 책에서 다룬 주제와 내용을 보고 나서 '여기서 부터는 내가 더 해봐야지'하고 발심(發心)하기를 바랄 뿐이다.
적어도 작가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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